탈시설이냐 탈가정이냐고 묻지 마라. ‘자립지원’이 답이다.
김석주 │ 2022-11-16 HIT 2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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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이냐 탈가정이냐고 묻지 마라. ‘자립지원’이 답이다. 김석주 (자폐청년의 부모 / 음악치료사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발달장애 자녀를 살해하고 자신의 목숨을 끊는 부모의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3년의 판데믹 동안 마스크도 잘 끼지 못하는 자녀와 생사를 염려하며 씨름하고, 물가상승에 가계부채까지 안팎으로 어려워진 현실도 견뎌냈지만, 평생 회복되지 않을 자녀의 장애, 내가 없으면 세상 어느 누구도 지켜주지 않을 것 같은 자녀의 미래에 대한 절망은 견딜 수 없었던 게다. 부모가 살아있는 동안은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가 떠난 후에 사회는 장애인의 삶을 지킬 수 있을까? 필자는 장애인거주시설의 음악치료사로 10여년째 일하고 있다. 이곳은 빌라식 주거형태로 각 호마다 거실과 부엌, 방 두 개에 대여섯명의 장애인과 생활지도사가 함께 거주한다. 이곳을 출퇴근하면서 나는 오히려 안도했다.
‘내가 없어도 내 아들을 돌봐줄 믿을만한 곳이 존재하는구나!’ 시설엔 외부 인권지킴이가 수시로 방문하여 장애인 개별상담으로 어려움이 없는지를 늘 살피며, 종사자 보수교육을 통해 언어적, 심리적, 물리적 환경을 개선한다. 그 예로 옷을 살 때 남자아이가 여아용 옷이나 악세사리를 고르더라도 가능한 한 취향을 존중하며, 성정체성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팀 협의를 한다. 성인기에 이른 장애인에게는 ‘누구씨’라고 호칭하고, 음주, 연애, 자립의 경험을 지원한다. 원하는 친구들과 카페, 호프에 가서 즐기도록 하고, 이성 간의 신체적 접촉과 심리적 갈등의 과정을 허용하고 상담해준다. 방과 후 취미학원이나 치료과목도 개인이 선택하도록 하며, 외출이나 등하교도 혼자 다닐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물론 이렇게 인권을 존중하려는 노력 뒷켠엔 위험부담도 있다. 평소에 혼자서 등하교를 잘 하던 고등학생이 버스에서 내릴 정거장을 놓쳐 종점까지 가버리고, 실종신고를 하여 찾아헤매는 일도 있다. 성적인 욕망으로 새벽마다 밖으로 뛰쳐나가는 청년이 있어서 밀실을 마련해 아늑하게 꾸며주고 욕구를 해소하도록 돕는 경우도 있다. 어떠한 경우든, 안전만을 위한 통제보다는 자유와 인권을 위한 더 나은 지원방안을 함께 고심한다. 이렇게 세심하게 개인의 선택과 실패할 권리까지 당사자 주도적 삶을 지원하지만, 시설의 구조상 어찌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몇십 년 전 일반고아원도 드물던 때에, 오갈 데 없는 장애아동들을 보살피고자 공간 기부와 봉사로 시작된 거주시설은 오직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지금도 인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지역주민들의 혐오로 인해 장애인거주시설은 외딴 지역에 위치했고, 종사자 한 명이 수십명의 장애아동을 돌보아야 했다. 이후 정부지원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의식주의 안정 및 장애인 5~6명에 종사자와 보조인까지 돌봄인력이 충원되었다. 언론에서 거주시설의 인권침해 사건을 종종 다루는데, 통계적으로 아동의 학대나 방임, 폭행 등의 사건은 가정에서 일어나는 비율이 훨씬 높다. 장애아동의 경우는 양육자의 인격이나 태도 문제보다, 서두의 가족동반자살 사건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사회적 지원과 인식의 부재로 인한 소외, 공포, 탈진 등 한계적 상황이 근본원인으로 해석된다. 시설의 종사자들도 같은 한계상황을 경험하는데, 그 예로 종사자 한 명이 여러 명의 장애아동들을 돌볼 때, 한 아이 기저귀를 가는 동안 다른 아이는 창문에 매달리고, 또 다른 아이는 문밖으로 달려나가는 위태한 일상을 겪는다. 종사자가 아무리 전문적인 역량을 가졌다 하더라도, 일대일 돌봄인력 지원 없이는 해결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리고, 충돌의 대부분은 종사자와 장애인 간보다, 장애인과 장애인 간에 일어난다. 종일 소리지르는 상동행동을 가진 이와 청각이 예민하여 귀를 막는 이가 같이 살아야하고, 밖에서 뛰어다니고 싶은 이와 방안에 꼼짝 않고 있으려는 이를 동시에 돌봐야하고, 물건을 던지는 습관을 가진 이와 겁이 많아 피하기만 하는 이가 분리될 수 없는 상황들이 지속될 때, 울화와 공격, 이탈의 도전적행동이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로구나!’ 약자와 약자 간에 서로를 탓하고 공격하게 하는 사회; 공포와 절망에 이른 부모, 탈진과 좌절에 이른 종사자, 그리고 방어능력도 없는 장애인들을 서로 대립하게 해선 안된다. 그리고 평생 동안 시설에서만 살았던 장애인에게 혼자 살겠냐고 묻는 질문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달팽이요리를 주식으로 먹겠냐고 묻는 것처럼 잘못된 질문이다. 마찬가지로 시설과 가정 외에, 개인별 자립지원의 실재를 본 적도 없는 장애부모에게 선택지를 고르라고 하는 것도 양편을 가르게 하는 나쁜 질문이다. ‘발달장애인 24시간 국가책임제’는 OECD 국가 중 경제력 10위권이면서 복지예산 최하위인 우리나라에서 엄연하게 솔선해야 할 과업이다. 또한 ‘인권적 자립지원’은 장애인 당사자가 원하는 개인공간의 선택과 일대일 돌봄인력의 배치, 근거리에서 상시 모니터하고 협업하는 팀 시스템의 확보를 기본으로 한다. 그 위에 ‘내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것을 먹고, 입고, 원하는 시간에 잘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과 선택을 제공하는 체험과정이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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