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보이지 않는 끈

이수현 │ 2022-12-07

17.png

HIT

394

보이지 않는 끈

 

이수현 칼럼니스트 (푸른솔중 교사)

 

똑바로 앉아.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 빨리 먹어.”

 

사회복무요원이 특수교육대상학생 옆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둘은 늘 다른 학생들과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은 아니라서 수업 시간에는 보지 못했지만, 학교에서 여러 번 마주친 적이 있다. 학생은 항상 사회복무요원이나 특수교사와 함께 있었다. 전해 듣기로는 학생이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자꾸만 문제를 일으켜 지원 차원에서 사회복무요원이 오게 되었단다. 그런데 나는 이 학생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언젠가 보았던 사진 한장이 떠올랐다. 장애인 시설에서 발 한쪽이 끈에 묶인 채로 초점 없는 표정으로 우두커니 앉아 있던 장애아의 모습이다.

 

사회복무요원은 특수교육대상자의 통합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무엇을 지원하고 있을까? 내가 잠깐 관찰한 바로는 식당에서 학생이 식사 외에 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었다. 식사 후에는 다른 곳에 가지 못하도록 개별학습 지도실로 곧장 데리고 갔다. 쉬는 시간에는 교실로 이동을 돕고, 교실에서도 늘 학생의 옆에 있었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운동장에서 활기차게 뛰어노는 다른 아이들의 생활과 극적으로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이 학생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또한 다른 학생들은 장애가 있는 친구와 그 옆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사회복무요원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장애가 있으면 비장애인처럼 자유롭게 학교생활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통합교육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완전한 분리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 모두 통합교육의 울타리 안에서 차별배제를 당연한 것으로 배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장애가 있는 학생의 수업 방해 행동이나 폭력이 학교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학교에서 학생의 장애 특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적절한 학습이나 생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특수교육대상자가 된 것은 필요한 적절한 지원을 받기 위해서인데, 아직 우리 교육 현실은 이를 위한 체계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저 문제가 발생하면 특수교사에게 일방적으로 맡겨지거나 부모가 호출되는 경우도 많다.

 

특수교육대상자를 둘러싼 문제 발생 시 학생을 무조건 분리하는 것은 통합교육의 본질과 어긋난다. 장애와 특수교육에 대해 한 조각의 지식조차 없는 사회복무요원을 붙이거나 특수교육실무원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도록 하는 것 또한 학생의 자유를 박탈하는 인권침해이다.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체계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필요할 경우 전문기관에 컨설팅을 의뢰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수교육대상학생의 경우 일반 교육과정을 따라가는 것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지원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원이 체계가 없고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한 학교에서는 통합교육 지원을 위해 요청한 사회복무요원이 장애학생만 보면 공황장애를 일으키는 사례가 있었다. 장애학생을 지원하기 위한 인력 선발에 최소한의 자격요건도 없었다는 얘기다. 그냥 어른 한 명을 옆에 붙여주는 것이 지원의 개념은 아니리라.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을 지원하는 일인데, 기본적인 자격이나 최소한의 교육도 없이 배치가 된다. 당연히 배치된 쪽도, 지원을 받는 쪽도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모든 학생이 장애, 비장애 상관없이 개인의 특성을 존중받는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통합교육이다. 이를 위해 꼭 필요한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장애학생을 분리하는 미봉책이 아니라, 처음부터 학교에 잘 적응해 갈 수 있도록 차근차근 도와서 문제행동이 예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지원이나 보호라는 명목하에 눈에 보이지 않는 끈을 장애학생의 발에 묶어두는 식은 바람직한 교육이라고 볼 수 없다.

 

지원인력을 배치하기 전에 반드시 사전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최소한 지원하는 학생의 장애에 대한 이해, 지원 방법, 문제 발생 시 대처 요령에 대한 교육 후 배치되어야 한다. 수업 시 그냥 학생이 꼼짝하지 못하도록 옆에 앉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리 수업 내용을 교사와 상의하여 학생의 수준에 맞는 학습자료가 제공되어야 하고, 지원인력은 수업 참여를 도와야 한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학생이 자유롭게 활동하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원해야 한다. 물론 장애의 정도가 심한 학생의 경우 많은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최종 목표는 학생이 스스로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도움을 차차 줄여갈 수 있는 계획이 필요하다. 이는 지원인력이 혼자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개별화교육팀원들과 함께 긴밀한 협의와 협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체계와 계획, 협력 없이 인력을 배치하는 것은 무작정 사람만 옆에 붙여 문제행동을 막겠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는 진정한 지원과는 거리가 멀다.

 

점심시간에 특수교육대상학생 옆에 사회복무요원 대신 친구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는 없을까? 장애의 경중에 상관없이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나란히 앉아 밥을 먹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마음껏 다닐 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더 이상 학교에서 장애인 격리 수용시설의 모습을 떠올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지원인력은 통제가 아니라 진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작성자
비밀번호
내용
이전글 탈시설이냐 탈가정이냐고 묻지 마라. ‘자립지원’이 답이...
다음글 스크린 타임은 틀렸다! : 진정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