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다양인에게 불친절한 세상
조미정 │ 2023-03-07 HIT 5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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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인을 비롯한 발달장애인과 신경다양인은 장애로 인해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는다. 신경다양인들이 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일에 비하면 이번에 쓰는 것은 사소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소한 일’ 하나 때문에 자폐인과 신경다양인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당사자의 눈으로 본 ‘사소하지만 불친절한 세상’을 하나하나 말해보겠다. 일전에 전철역에 갔을 때 붙어있던 표지판이다. 대다수의 비장애인들은 이것을 보고 ‘역사 내 비둘기에 모이를 주어서는 안 되겠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표지판을 본 자폐인과 신경다양인 역시 그렇게 생각할까? 이 표지판에서 이상한 점이 보이는가? 제목은 “비둘기 모이주기 ‘금지’”라고 되어 있고, 본문에는 “모이를 주는 행위를 ‘삼가’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혀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금지’는 “법이나 규칙이나 명령 따위로 어떤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함.”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삼가다’는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와 “꺼리는 마음으로 양(量)이나 횟수가 지나치지 아니하도록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제목에서는 모이를 주어선 안 된다고 하고 본문에서는 지나치지 않도록 조심하라니, 이것은 한 번쯤은 모이를 주어도 되는 것인가, 절대로 모이를 주어선 안 되는 것인가? 자폐인과 신경다양인은 이 표지판을 보면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것은 어느 건물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촬영한 사진이다. 그런데 작동방식이 다른 엘리베이터와 다르다. ‘B2’, ‘B1’, ‘1F’…와 같은 버튼을 가진 엘리베이터와 달리 이 엘리베이터는 전화기 다이얼과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 엘리베이터에서 지하 1층을 가려면 B버튼을 누르고 1을 눌러야 한다. 13층을 가려면 1을 누르고 3을 눌러야 한다. 비상벨 밑에 작동 방법이 적혀있긴 하지만 영어와 기호로 되어 있어 발달장애인이 알기 어렵다. 비장애인도 당황하기 쉬운 구조인데, 발달장애인이라면 아마 십 분 이상 헤맬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주어진 과제를 하려면 과제의 분량을 알고 지켜야 한다. 그런데 어느 쪽에서는 ‘A4 1장’이라고 되어 있고, 다른 쪽에서는 ‘A4 1쪽’이라고 하기도 한다. ‘장’은 보통 양면 1쪽씩 2페이지를 뜻하고, ‘쪽’은 종이의 한 단면을 일컫는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장’을 ‘쪽’과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선배와 같은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쉽게 해결될 문제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신경다양인 학생은 분량에 맞지 않는 과제를 해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애매한 분량 표현도 문제이다. ‘A4 1장 내외’는 플러스마이너스 몇 자를 뜻하는 것인가? 요리에서 사용되는 ‘적당량’이라는 표현은 도대체 몇 그램을 나타내는 말인가? 모두 신경다양인의 이해를 어렵게 하는 표현들이다.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이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사용자가 느끼는 전반적인 경험을 일컫는다. 사용자가 긍정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면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고 그 제품과 서비스를 더욱 잘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면 제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거나 다른 때보다 느리고 불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위에서 열거한 사례들은 자폐인과 신경다양인에게 부정적인 경험을 낳을 것이다. 결국 자폐인과 신경다양인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비장애인과 신경전형인보다 더 느리고 불친절하고 불편한 세상을 살아갈 확률이 높다. 중차대한 문제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이런 사소한 사용자 경험이 주는 피로감 때문에 당사자는 세상에 나서기 주저하게 될 수도 있다. 신경다양성이 전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신경다양인에게 더 나은 세상을 보여주려면 기존의 감각장애인, 신체장애인 위주의 접근성 의제를 발달장애인과 신경다양인에게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발달장애인 접근성이 확대되어야만 우리가 꿈꾸는 신경다양성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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