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을 지나는 부모님들께
김석주 │ 2025-04-03 HIT 126 |
---|
김석주 (자폐청년의 부모/ 음악치료사/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부산에 첫눈이 왔다. 겨우 내내 한 번도 내리지 않던 눈이 이제야 내렸다. 3월은 이렇다. 새 봄,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바싹 마른 가지에 파릇한 싹이 돋고, 새 학기, 두근거리며 재잘대는 아이들이 여기저기 피어난다. 그 가운데 봄비인지 겨울비인지 모를 시린 물기가 쏟아지고, 꽃씨인지 눈송이인지 모를 하얀 조각들이 흩날린다. 화사하게 미소를 건넸는데 돌아오는 쌀쌀함에 옷깃을 여미게 되고, 낙담하고 웅크려 있자니 어느새 스며드는 따스한 햇살에 다시 마음이 일렁인다. 3월에 만나는 장애아동의 부모님들은 대부분 불안과 걱정으로 신경이 곤두서있다. ‘괜찮을 겁니다.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날 겁니다. 아이가 잘 적응할 겁니다.’라는 말은 가슴에 머물지 못하고 가늘고 시린 눈발처럼 흩어져 날아간다. “순진해보였던 아이들이 내 아이를 지속적으로 괴롭혔어요.” “작년 담임교사와 특수교사는 서로 책임을 미루기만 했어요.” “개별화교육지원 회의에 학교장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어요.”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된 순간부터 부모들은 절망과 자책, 슬픔과 분노의 소용돌이를 겪고, 마음의 아픔보다 더 힘든 돌봄의 현실, 매일매일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 생존의 위협들을 견뎌낸다. 그런 와중에 믿었던 학교에서 당한 상처의 경험은 사람에의 신뢰, 미래에의 희망에 쩍쩍 금이 가게 한다. ‘싸워야 하나, 참아야 하나, 다 그만둬야 하나...’
필요하면 싸워야 한다. 단, 잘 싸워야 한다. 내 아이가 당한 피해를 밝히되 어떤 이유로 그 일이 일어났는지 전후 맥락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가해자 뿐 아니라 주변인들이 어떻게 대처했는지 환경적 상황들도 알아야 한다. 이 싸움은 단순한 보복이나 감정의 해소를 위한 것이 아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부모가 없는 곳에서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아이와 친구들과 교사들이 모두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다. 누가 이기고 지는 전쟁이 아니라, 함께 윈윈하여 성장하는 건강한 학교로 회복시키기 위함이다. 조그만 과제 하나를 수행하는데도 계획과 시행착오의 과정과 끝까지 해내는 의지가 필요하듯이, 아이 주변의 사람과 환경을 바꾸는 일은 보다 세밀한 계획과 다양한 변수들에 대처하는 과정과 긴 시간 협력자들을 구축하고 함께 다져가는 인내가 필요하다. 자녀의 장애 진단과 치료,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합의 폭풍우 속에서 단련된 지난 시간들은, 학교라는 보다 넓은 장에서 아이의 친구들과 교사들, 학부모들, 한 마을을 변화시키고 함께 성장하기 위한 훈련의 단계였던 셈이다. 영유아기, 학령기, 청소년기, 성인기, 노년기의 전생애주기 가운데 그나마 학령기는 통합 교육을 위한 시스템 면에서 근거가 잘 마련된 편이다. 물론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하고, 정성스레 잘 꿰어야만 쓸만한 보배가 되는 것이기에, 같은 시스템이라도 적용하는 역량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아래의 몇 가지 시스템 재료를 하나씩 꿰어보자, 첫째, 개별화교육계획(IEP)의 실행이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22조(개별화교육)에서는 아래와 같이 규정한다. 법이 정하고 있음에도 현장에서는 팀장을 맡아야하는 학교장이 회의에 불참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아무리 특수교사가 애를 써도 담임과 일반교원들과 조정해야하는 일들은 결정과 책임의 역할자가 분명해야만 실행 가능하다. 장애학생은 이와 같은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 둘째, ‘장애인 인식개선교육’은 필수적인 법정의무교육이다. 연 1회 이상 반드시 받아야하는 이 교육이 형식적으로 지나가지 않도록, 현장에서 지원하기 어려운 발달장애 이해교육으로 내용과 소재를 제안할 수 있다. 하나의 실마리를 푸는 것만으로도 그 다음의 소통은 연결되어 풀어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자폐성장애인은 감각적인 과민함이 있다는데, 우리 학생은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라고 교사의 질문을 이끌어낼 수 있고, 아이의 어려움을 하나씩 차근히 전해줄 수 있다. 셋째, ‘학부모 참관수업’에서 아이의 독특한 어려움을 알리고, 학부모들에게 이해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발달장애는 숨기면 숨길수록 오해에 휘말리게 된다. 누구든 적어도 몰라서 오해하는 일은 없도록 먼저 나서서 장애를 알려주어야 한다. 구두 언어는 어렵지만 그림과 기호로 소통할 수 있는 점, 백과사전처럼 말하지만 상황에 맞게 말하기 어려운 점, 40분 착석은 어렵지만 실무원 보조로 점점 나아지고 있는 점, 백점짜리 학생만 있지 않은 것처럼 장애학생도 수업의 여러 면을 배우고 있는 점,...들을 알리고, 비장애학생들도 사람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배려로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경험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장체험학습 시 보조인력의 동행 방법을 의논하기, 어떤 교과활동에서도 배제하지 않고, 모든 학생은 실수와 실패의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것임을 이야기하며, 교사의 자부심과 긍지를 북돋워주어야 한다. 그렇다. 교사를 경계하고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최근 일련의 사건사고로 또 다른 면에서 상처받고 위축된 교사들을 일깨우고 북돋워 함께 회복해야 한다. 성숙한 부모는, 자녀 주변의 모든 이들 속에서 실낱같이 작은 것이라도 긍정성을 찾아내고 북돋운다. 길고 어려운 수고 속에서 함께 성장하는 보람을 경험하게 한다. 따돌림, 집단폭행, 수업배제, 전학권유, 나의 아들이 지난 날 학교에서 경험했던 아픈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러나, 기억의 필름을 다시 돌려보면 아들이 일으킨 문제행동들을 함께 고민하고 인내했던 친구들과 교사들이 더 많았다. 어떤 아이든 엄마 한 사람이나 가족들의 힘만으로 자라지 않는다. 학교와 마을, 사회의 체계와 지원하는 사람들의 수고로움 속에서 자란다. 부모도 그 가운데서 흔들리며 함께 성장한다. 부디 나의 동료 부모들이 혼돈의 3월에 꿋꿋이 씨를 뿌리고, 무성하고 거친 여름을 지나 가을에는 작은 열매라도 거두길, 그래서 긴 겨울 편안한 회상을 누릴 수 있기 바란다. #함께웃는재단 #서플러스글로벌 #발달장애이야기 #자폐 #자폐인 #자폐스펙트럼장애 #전문가칼럼 #장애아동 #특수교육 #학교폭력 #개별화교육계획 #장애인식개선교육 #학부모참관수업 #협력 #성장 #지지 |
이전글 | 새 학년을 맞이하는 방법 |
---|---|
다음글 | 내 본캐는 소중해서 그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