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만
장지용 │ 2022-10-14 HIT 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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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만
장지용 칼럼니스트 흔히 하는 말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적어도 10년이 지나면 세상은 분명히 변화하기 마련이라는 의미이다. 발달장애계만 봐도 10년 전 발달장애계 분위기와 지금의 발달장애계 분위기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년 전에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했던 시절이었다. 발달장애인이라는 개념조차 보급되지 않았던 그런 어두운 시절이었다. 그 시절 발달장애계의 과제는 기본적인 틀조차 없었기에, ‘발달장애인법 제정’이 최대의 과제로 떠오르던 시점이었다. 지금도 엉성하고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어쨌든 발달장애인에 대한 최소한의 정책조차 갖춰지지 않았다. 발달장애인법상 개인별지원계획이라는 단어도 없었고, 주간활동서비스니 뭐니 하던 것도 별로 없었던 시절이었다. 사실 내가 어린 시절이었던 지금으로부터 무려 30년 전인 1990년대 시점에서는 발달장애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20년 전인 2000년대에는 이제야 발달장애가 장애로 공인되었다는 점을 봤을 때, 점점 진보하고 있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지금 수준의 엉성하더라도 최소한의 틀이 있지는 않았던 시절이었다. 어머니의 이야기로는 1990년대에 나에 대해 들였던 ‘치료실’ 비용이 현재 시세로 환산하면 거의 100만 원 수준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들은 적 있었다. 물론 지금은 발달재활서비스 제도로 엉성하지만 어쨌든 지원정책이라는 것이 나름 있는 시대이지만 그 시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10년은 훨씬 더 넘었기는 해도 강산은 확실히 변한 셈이다. 발달장애인법의 제정은 이제 확실히 발달장애인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존재이다. 10년 전 제정 투쟁 때만 해도 엄청난 일이 있었고, 심지어 내가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근무할 적에 사무실 앞에서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요구하는 농성이 있었던 것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나로서는 이제 확실히 변화했다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10년 전에는 발달장애를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어려웠던 시점이었지만, 그 10년 사이 엄청난 진보가 있게 되어 이제 두 번째 이야기가 있었던 오티즘 엑스포가 공개적으로 열릴 수 있게 된 것도 10년 사이의 거대한 진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그러한 이야기를 대놓고 할 수 없었는데, 10년 사이 이제 공공연하게 우리들의 이야기를 박람회를 열어서 그 거대한 세계를 한 자리에 소환하게 된 우리들의 변화를 새삼 느끼기도 한다. 10년 전의 발달장애 인구와 지금의 발달장애 인구도 급격히 변화했다. 과거에는 소수에 그쳤던 발달장애 인구가, 이제는 20대 이하에서는 많이 잡으면 80%대까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형편이 되면서 수적으로 불리하지 않은 시점이 되었다. 과거에는 신체장애가 압도적이었는데, 30대 즈음부터는 발달장애와 신체장애 인구 비중이 1:1 수준이 된 것이 그 시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활동하는 장애인의 비중에서는 아직 발달장애인의 비중은 작으니 이것은 서글픈 현실이라 하겠다. 무엇보다도 발달장애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화했다는 느낌이 든다. 10년 전 미디어에서는 발달장애인을 특이한 존재로 바라봤고, 그러한 캐릭터가 나오면 으레 ‘클리셰’가 하나씩 나오는 습성이 있었다. 소위 말하는 ‘그 나물에 그 밥’식 발달장애 묘사와 서술이 나왔던 시대였다. 발달장애인이라고 묘사된 인물은 대체로 남자 아동·청소년이었고 성인과 발달장애의 상관관계는 전혀 증명되지 않은 무슨 상상의 동물을 본 것인 양 처분하던 시대였다. 이제는 다르다. 정은혜와 ‘우영우’의 성공 이후, 한국 사회의 창작 서사에도 ‘성인 발달장애인’이라는 것이 나온다고 해서 이상할 것 없다는, 이제는 ‘성인 발달장애인’이 등장한다고 해서 ‘설정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러한 와중에 발달장애의 서사는 성인기로 확장된 것이기도 하다. 이제야 미디어는 성인과 발달장애의 상관관계를 인정해주고, 성인 발달장애인의 존재를 공인했다. 그리고 여성 발달장애의 존재도 이러한 과정에서 미디어는 덤으로 공인했다. 그리고 ‘우영우’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전문직 중의 전문직인 변호사로 설정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제 발달장애인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즉 학력이나 직업 등의 클리셰를 또 깨버린 거대한 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야 발달장애인 서사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 것이 10년간의 거대한 변화라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짚고 싶은 10년 사이의 진전은 바로 발달장애 당사자 집단이 그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피플퍼스트 조직이 생겨났고, estas 같은 자폐인들이 주도하는 집단이 생겨나는 등 당사자 집단이 싹을 틔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estas는 내년인 2023년, 설립 10주년을 맞이한다. 물론 본격적인 활동은 2016년에 시작되었지만, estas의 역사는 2013년에 시작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 10년 사이의 거대한 결말이 바로 발달장애 당사자 집단의 대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10년전 발달장애계의 분위기와 지금의 발달장애계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다. 거의 급격하게 변화하여 이제는 발달장애를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다시 2030년대가 찾아올 것이다. 그 10년 뒤인 2030년대에는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발달장애계가 변화할지를 기대해본다. 제발 발달장애인 선출직 공직자나 진짜로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공기업/공공기관/대기업 ‘필기시험씩이나 보고 들어가는’ 공채를 뚫거나, 공개된 자폐인 결혼 1호가 나올 수 있기를 기원한다. 즉, 2020년대에는 이러한 것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2030년대에는 이것을 다 이뤄진 모습으로 맞이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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