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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주기적 발달과업에 맞추어 현재를 체크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용기   이민희(동구한마음종합복지관장)   발달심리학자인 하비거스트(Harvighurst, 1972)는 인간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평생 동안 성장하고 생애주기마다 발달과업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특정 생애주기에 있는 사람은 그 사회에 적응하기 위하여 사회가 요구하는 과업뿐만 아니라 신체적·인지적·심리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업들이 있습니다. 장애가 있든 없든 인간이면 누구나 배우고 연습하여 습득하여야 하고 주도적으로 도전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성장해야합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수행이 가능한 것도 있고,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것도 있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있으면 더 잘 수행하는 것도 있습니다.   발달과업은 다음 생애주기로 쉽게 넘어가기 위해, 그 다음 생애주기 과제도 더 잘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해당 생애주기에 맞추어 최소한의 도움을 받고라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해결되지 않을 과제를 끌어안고 다음 생애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는 것 또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특별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강점과 자산을 가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들을 수행하려는 욕구와 의지가 있습니다. 다만, 발달장애인의 주위에는 기꺼이 함께 과제를 수행하려는 신체적, 사회적 및 정서적 지지자가 더 많이 필요할 뿐입니다.   바로, 현재의 생애주기 과업을 잘 체크하여 다음 생애주기를 잘 맞이하기 위해 당사자, 가족, 전문가가 파트너십으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수립되어야하는 생애설계, 평생설계가 필요합니다. 특히, 돌보는 이들의 부재로 혼자 남겨져서 살아가게 될 발달장애인의 중장년기와 노년기를 위해서는 지금 현재의 개인특성에 맞춘 교육·건강·문화여가·대인관계·일(직업)·주거·재정·법적옹호 등과 관련된 과업을 체크하고 수행하는 일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2019년 39세의 발달장애 여성은 어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온전히 모든 과업을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생활했습니다. 모든 과업은 어머니의 몫이었습니다. 2021년에 갑작스럽게 혼자 남겨졌습니다. 어머니는 어떻게든 생명을 부여잡고 딸과 함께할 수 있기를 소망했지만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한 2020년부터 어머니와 활동지원사, 사회복지사는 언젠가 혼자 남겨지지만 자신의 삶터 안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여성을 상상하면서 자립적인 성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평생설계를 수립하고 지원체계를 만들어 갔습니다. 집안일을 스스로 할 수 있게 하고, 지역사회에서 사람들과 만나 인사를 하며, 건강을 체크하고, 후견인과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재정생활을 하는 등의 과업들을 수행하였습니다.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혼자지내는 2년은 그리움에 눈물을 짓기도 하지만 복지관을 다니면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했던 집에서, 평안하고 안전하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혼자 남겨질 딸 때문에 마음 졸였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2개월을 남기고 공공후견인을 세우고, 내 딸이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는지를 그때서야 생각하며 후회의 눈물로 잠들었습니다.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우리는 가끔 ‘장애’라는 틀에 놓이게 되며 과업 달성보다는 안전한 돌봄을 선택하거나 치료에 치중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다음에 다가올 생애주기를 놓쳐서 달성되지 않게 될 과업(말하기, 읽기, 쓰기 등)에 매달리다 결국 전적으로 누군가의 돌봄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 삶을 마주하게 됩니다. 영원한 둥지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기에 지금의 생애주기 과업을 체크하고 다가올 다음 생애를 준비하는 평생설계를 수립할 용기를 가지세요.   고유한 존중받는 ‘최소한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자립적인 사람’으로 지역사회 안에서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을 상상해보시길 바랍니다.

1990년대, 버블경제가 붕괴된 후 사람들의 관심은 ‘물질적인 성장’에서 ‘새로운 지식, 아름다움, 영혼의 성장’으로 크게 전환하기 시작했다. 원하는 물질을 손에 넣어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과 폐색감에 빠지기도 했다. 이에 새로운 키워드로 ‘새로운 지식’ ‘새로운 아름다움’이 부상했다. 물질적인 풍요를 얻기 위해 경제성을 추구하고 효율주의에 빠져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와 같은 모든 측면의 유대가 끊겨 있었다. 그러한 유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아름다움’이 필요했다. 해결 방법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사람을 치유하고 활동을 부여하며 나아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로서 ‘예술의 힘’을 눈여겨보았다. 예술이 지닌 ‘연결의 힘’과 ‘치유의 힘’을 살려 사회를 디자인하고 공동의 가치를 바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 공동의 가치가 실현되는 여러 가지 예술 활동 중에 사회의 커다란 흐름을 주도하게 된 것이 오티즘 예술이라는 장르의 빠른 확산이다.   오티즘 예술문화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던 사람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오티즘 예술과 헬스케어’의 연결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사람들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예술은 어떠한 기능을 하는가를 탐구하기 시작했고 오티즘 당사자들이 예술행위를 통해 스스로의 감각을 알아가며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찾아가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언젠가 미국의 ‘아메리카 아츠인헬스케어 학회’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케어의 현장에 예술을 도입하여 ‘슬기롭고 즐겁고 건강하게 산다’의 주제가 베이스인데 여기서 말하는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예술 창작을 통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활기차게 생활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즉 ‘살아가는 기술’로서의 예술 역할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창작자가 아닌 오티즘 예술을 향유하는 감상자에게도 헬스케어로서의 예술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티즘 미술에는 모든 개념을 초월한 표현이 많다. 솔직하게 스스로 느낀 대로 표현한다. 개념화된 미술과는 전혀 반대이다. 기성의 미술공식이 무시된 새로운 예술로 살아나는데 한편으로는 미술학의 전문 관점에서 복지라는 필터를 통해 오티즘의 예술을 마이너의 미술로 간주해 낮게 여겨지는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현대 미술을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탈출구로 예술의 정신성을 새롭게 복구해 주며 속도에 지친 현대인의 심신 건강을 회복시켜주는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정의되며 우리 모두의 감각의 문을 자유롭게 열어 놓게 함으로서 오감을 활성화시켜 신체의 건강으로도 연결되는 치유의 길이 시작된다고 설명하고 싶다.   이렇게 창작자나 향유자 모두의 심신의 건강에 오티즘 예술의 힘이 효과를 발휘하며 사회 속으로 스며가는 중에도 간혹 오티즘 예술을 ‘특수한 것’으로만 생각하고 오티즘 당사자의 소통의지를 무시한 채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잘도 그렸네’ 또는 ‘오티즘은 서번트가 있다던데’등의 복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잘못된 인식이 퍼져 있는 것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예술 헬스케어 문화의 구축을 위해 일상에서 의도적으로라도 접하는 오티즘 예술은 인간과 인간의 신뢰를 쌓는 우리들의 사회적 굴레를 다시 엮는 연결의 치유를 통해 서로의 존재에 바탕을 둔 관계이다. 시민 한 사람 한사람의 심신의 건강이 우리 사회의 건강 척도와 연결되어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만큼 오티즘 예술과 헬스케어는 예술의 사회화, 사회의 예술화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오티즘 예술과 헬스케어의 관계에 대해 21세기는 심신케어의 시대라고 정의한 어느 문헌의 말을 다시 생각해 보며 기성의 관념을 초월한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아름다움’을 열어가는 긍정적 가능성을 함께 같이 궁리해 나아가야하지 않을까 제안해 본다.       김은정 컬럼니스트